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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에 나오는 명화 展 >

교과서에 나오는 394점의 세계명화 중 단 1점도 갖고 있지 않은 대한민국이 1,000년 후부터 2,000년 동안 전 세계에 있는 세계명화를 전부 보유한 문화·관광 강국이 된다. ‘혼자수’를 통해서….

 

미술은 인류가 의식주 해결을 위한 기원과 우주와 소통하며 병의 치유와 주술적 의미, 자기표현과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미술은 구도를 잡고 색을 칠하면서 완성된다. 이로써 공간을 분할하고 배치하는 법과 색을 배우는 것이다. 이렇듯 미술은 공간과 색을 이해하면서 관찰과 상상력, 표현, 조화와 균형, 스타일과 개성, 패션, 설계와 건축, 더 나아가 산업의 근간인 디자인을 만드는 원천 학문이 되었다.

 

지금은 미술의 원초적 목적 중 하나인 치유, 곧 ‘healing’ 하기 위해, 교양 있는 현대인으로 살기 위해 미술품을 찾아다니며 보고 있다. 미술품을 많이 가진 나라가 강대국으로, 문화국가로 예우받고 있고 이로 연계된 문화ㆍ 관광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다. 2012년 프랑스에는 미술품인 에펠탑, 루브르 등을 보기 위해 8,3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다녀갔고, 2014년 교과서에 나오는 31점의 명화를 가진 루브르미술관을 방문한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과 비슷한 1,400만 명 수준이다. UAE의 아부다비에서는 마르지 않을 문화의 샘을 파고자 기름을 판 돈으로 루브르미술관 분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자이드미술관을 만들고 있다. 국가가 주도해서 미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과 문화 ㆍ관광의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이렇듯 미술이 중요하기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교과서를 통해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명화이다. 우리의 그림은 여백을 중시한 중국화의 영향으로 공간을 이해하기 힘들고, 수묵화가 주류이다 보니 색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명화를 본다. 그러나 책의 한정된 도판으로는 원본 크기를 보여줄 수가 없어 크기를 문자로 표기하고, 커야 손바닥만 하게 보여준다. 그것으로는 공간과 색에 대한 이해와 원작 크기에서 받는 감흥은 얻을 수가 없다. 교과서에서는 그림을 보여주고 원화가 이렇게 생겼으니 기회가 되면 원화를 보라는 의미이다. 우리 민족이 머리가 좋아서 교과서에 나오는 명화를 직접 보지 않고도 이렇게 발전했는데 만일 어릴 때부터 원작의 명화들을 볼 수 있었더라면 모든 방면에서 더 큰 발전과 세계적인 화가들을 더 많이 배출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를 원작으로 몇 명이나 보았겠는가? 또는 세상을 살면서 몇 점의 세계명화 원작을 보고 생을 마치겠는가? 미술의 교육과정 속에서 교과서를 통하거나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명화들은 약 400여 점에 이른다. 작가가 17권의 초, 중, 고 교과서와 2권의 전문가가 권하는 책을 분석하니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한 세계명화(그래야 작가가 작업하기에)는 394점에 이른다. 그 작품들은 24개국 168개 미술관 36명의 개인 소장가가 가지고 있다. 그 작품 중 우리나라는 애석하게도 단 1점도 없다. 우리의 경제 수준이 세계 상위라고 자랑하지만, 우리의 문화 수준은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 혼자수 이용주 작가가 학생들 또는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혼자수로 세계명화를 원작 크기로 10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1점도 없는 세계명화 394점 중 150여 점을 원작 크기로 완성했고 지금은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을 작업 중이다. 24개국에 204곳에 흩어져있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혼자수로 제작했기에 대한민국이 3,000년 문화와 관광대국의 초석을 마련한 셈이다.

이제 그 작품들을 전시하여 약 1,000만 명(매년 약 70만 명이 학교에 입학한다.)에 이르는 학생들과 애호가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지금 그가 가진 작품 전체를 전시하려면 1,500평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용주는 전시관을 마련해 입장수익과 초상화나 주문 작품의 판매 수익으로 잔여 세계명화를 완성하고, 벽과 천장, 가구와 커튼까지 자수로 채워진 혼자수궁에 교과서명화를 전시할 꿈을 꾸고 있다. 미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혼이 담긴 우리의 것으로 세계 최고라는 예술 작품을 만들며, 그것으로 생긴 수익의 10%만 고생하고 미술관을 지켜갈 작가 자손에게 주고 나머지는 혼자수궁 옆에 보육원과 양로원이 같이 있는 사회시설을 만들어 어려운 예술가와 소년·소녀 가장, 북한의 아이들을 위해서 사용할 계획이다. 예술로 인한 힐링과 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베푼다는 것이 바로 그가 지켜나갈 ‘혼자수 정신’이다.

ARTIST

이용주

LEE YONG JU

이용주(57년생) 작가는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였고, 91년도 등단한 소설가였지만 작품을 작품으로 평가하지 않고 학벌로 평가하는 풍조로 늘 이류인 것이 싫었다. 1974년 국립 철도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할머니의 친구인 이북출신의 자수 장인에게 가색자수의 밑그림을 그려주고 배웠던 자수법의 기억을 되살리며 95년 말 절필하고 직장이었던 한국통신도 그만 두었다. 명맥이 끊긴 가색자수를 되살려내고, 나만의 것을 개발하여 자수를 격상시킬 방법. 즉 사실감과 입체감을 만들어 내는 자수의 방법을 연구한다면 일류가 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어려운 작업과 미친 듯 매달린 자수 탓에 가정도 못 지켜 이혼도 했었다. 수익이 없었고, 일본 기모노 자수를 공급하는 곳에서 기자를 가장해 공방 취재 후 인원들을 빼내가 공방은 문을 닫고 작업마저 곤란했었다. 그래도 자수를 하려면 자금이 필요했기에 사업을 시작했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자수를 다시 시작할 기회를 잡았다. 공방 문을 열기 전에 자수법이 같고, 손기술이 좋은 북한에 자수를 의뢰해서 작업을하기도 했지만 종교작품이나 신체가 드러나는 작품, 정치 사상적인 한계 등으로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들의 끈을 놓지 않고 자수법을 가르치며 OEM형태로 많은 작업을 시도했다. 2002년, 그동안 개발했던 자수법의 발명특허 등록을 의뢰하여 2004년 특허 등록이 되었고, 또 다시 자수와의 싸움을 시작하면서 ‘혼자수’ 라고 작가가 이름을 지었다.

‘혼’을 담아 자수를 한다와 우리민족의 가색자수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의 ‘혼’, 세계 최고 일류가 되겠다는 다짐의 ‘혼’, 모두 자수로 채워진 전 세계 유일한 자수궁을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경주에 세우겠다는 역사의 ‘혼’, 이 혼자수로부터 만들어지는 수익으로 헐벗고 굶주리는 아이들과 예술가를 위해 쓰겠다는 베품의 ‘혼’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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